파테마는 왜 거꾸로가 되었을까?

May 24, 2017·
Sumin Han (Immanuel)
Sumin Han (I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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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된 파테마”에서는 중력의 방향이 정반대인 두 가지의 세상이 존재한다. 바로 파테마가 살고있는 세상(이하 P세상)과 에이지가 살고있는 세상(이하 A세상)이다. 작품에는 등장하는 인물 뿐만 아니라 물질에 대해서도 마치 프로그램 된 듯이 각각이 속한 세상의 중력의 물리 법칙을 따른다. 그러나 파테마와 에이지가 언어를 통해 소통이 가능하고, P세상에 속한 파테마가 A세상의 빵을 먹어 소화시키는 점을 미루어 보아 이 두 세상은 분명히 교류가 가능하며, 그 본질적인 면에서는 상통하는 면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작품에서 유심하게 보아야 할 점은 P세상과 A세상에서의 아이들을 교육을 시키는 방법이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먼저 P세상의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에게 A세상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에이지가 폴타의 도움을 받아 지하세계에 들어갔을 때에도 촌장과 어른들은 아이들이 에이지를 목격하는 것을 막았다. 그래서 파테마는 에이지를 만나기 전 까지는 박쥐 인간을 보고도 공포를 느낄 뿐 A세상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에이지와 폴타가 파테마를 구하러 가기 전에 촌장이 그들에게 이야기 했듯이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정보를 제공한다. 반면 A세상에서는 이자무라의 지배 아래 A의 세상만이 절대 진리, P세상을 타락한 세상이라고 종교처럼 학생들을 세뇌한다. 따라서 A세상의 교육을 지배하는 절대권력의 상징인 이자무라는 작품 내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이 작품의 아이러니한 점은 결말까지 지켜본 관객의 입장에서조차 과거의 중력 실험이 발생하기 전 A세상과 P세상 중 무엇이 최초의 세상이었는지에 대해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A세상에도 디딜 수 있는 초원과 별이 떠있는 하늘이 존재하고, P세상에도 초원과 달이 떠있는 하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A세상의 하늘로 파테마와 에이지가 떨어졌을 때 땅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별들의 존재가 수많은 공장불빛 이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P세상의 하늘에 대해서는 무엇이 존재하는지 까지는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그것을 단서로 P세상과 A세상 중 무엇이 똑바른 혹은 거꾸로 된 세상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애초에 거꾸로라는 단어는 본질적으로 절대적인 지표가 아닌 상대적인 방향성을 나타낸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객관적으로 얻을 수 있는 진리란, 세계에는 P라는 세상과 A라는 세상이 공존한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자무라가 범한 가장 큰 오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기관에서 이자무라의 교육방식을 쓰고있다. 예를 들어 작곡가를 지망하는 학생이 있다고 해보자. 작곡가 지망생은 곡을 쓰는 방법을 배우는 단계이므로 다양한 장르의 곡을 써보고, 장르들을 섞어도 보고, 이미 있는 곡도 다시 써 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작곡가 지망생에게 어떠한 곡을 써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카이스트의 교수들도 매한가지다. 연구주제를 찾는 대학생, 대학원생들에게 그들이 대학원을 오기 전이나 연구자가 되었을 때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학생이란 여러 시도를 해보고 실패를 해보는 위치지, 어떤 연구를 해야하는지 주제를 알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그것을 볼모로 교수는 학생을 자신의 연구를 위해 희생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왜 많은 교육자들이 이자무라의 교육방식을 고집할까? 왜냐하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란 그들의 기득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자무라가 지식을 이용해 A세상을 지배한 것과 마찬가지다. 학점은 교수가 학생에게 행사하는 권력을 상징한다. 작품에서 처럼 교육자는 점수 시스템을 도입하여 점수를 무기로 삼아 학생들을 주입식으로 가르친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그들의 지식 기반이 일부 독특한 인물에 의해 흔들리는 것이다. 마치 에이지는 이자무라에게 “당신은 두려운거야”라고 했던것 처럼 말이다. 만약 에이지의 아버지가 하늘을 날았다는 것을, 그 희망을 A세상 사람들에게 전했으면 사람들은 P세상을 하나의 세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자무라가 주장했던 P세상은 타락했다는 신념이 본질적으로 무너져버리며 자신을 지지하던 권력을 잃게 된다. 에이지의 아버지를 코페르니쿠스에 비유해 볼 수 있다. 과거의 기독교가 지배할 당시엔 인간이 중심이고 신이기 때문에 주변 모든 행성이 돈다는 천동설이 깨지면 종교적인 기반이 흔들렸다. 그렇게 되면 성직자들은 권력을 잃기 때문에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를 화형시키기에 이르렀다. 다시말해 이자무라와 같은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기 보다는 자신의 밥벌이가 되었던 지식이 거짓으로 검증되고 자신의 명예와 사회적 지위에 손해를 얻는 것을 두려워한다.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다. 훨씬 좋은 신기술과 이론이 발견되어도 자신의 책을 팔고 자신의 강사직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배우기 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금기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기술에서의 5년은 다른 분야의 100년에 맞먹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한다. 그래서 책을 써도 1~2년 안에 기술이 바뀌거나 업데이트 되어 무쓸모해 지는 일도 많고 프로그래머들은 하나의 기술을 익히더라도 그 기술이 5년뒤에는 안 쓰이거나 완전히 방식이 달라져 새로 배워야 할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많은 교수들은 몇 십년 전의 의 기초적인 지식을 진리인 마냥 학생들에게 주입시키고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는 식이다. 가끔 일부 깨우친 교수님께서는 미래는 항상 새롭게 변화하고 있으므로 지금의 지식을 너무 외우려 하지 말고 그것을 기반으로 앞으로의 기술을 디자인 하라고 조언하시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소수의 교수님들이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까지는 고독한 싸움이 될 것이다.

이처럼 ‘거꾸로 된’, ‘잘못 된’, ‘틀린’ 이라는 단어들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나쁜 기득권에서부터 발생한다. 예를 들어 미국인을 우리는 똑같은 인격체로 인정하기에 외계인, 속이 거꾸로된 사람, 타락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거꾸로 라는 말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을 때, 다른것이 아니라 틀렸다고 생각할 때 발생하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에 거꾸로 라는 말을, 그 비슷한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교수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맞지 않다고 하여 새로운 이론을 잘못 된 이론이라고 말하거나,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등이다. 하지만 나와 다른 세계를 나쁘고 틀렸다고 보아서는 그 속의 진실됨을 이해할 수 없다. 마치 에이지를 제외한 A세계의 사람들은 별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한 것 처럼 말이다. 다시말해 파테마를 거꾸로 만든 것은 이자무라의 기득권이다.

따라서 한국의 교육방식도 크게 달라져야 한다.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 있어서의 교육은 자신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게 하고 지식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주어져야 한다. 독일에서는 문자 교육을 우리나라 나이로 초등학교 3학년 때 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너무 일찍 문자를 익혀버리면 사고가 그것에 제한되어 막힌다는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스로가 알아가고 그 아름다움, 학문의 아름다움을 깨우쳐 나가는 것이 진정한 즐거움일 것이다. 마치 파테마가 A세상에서 자기가 당장 떨어질 지도 모르는 발 밑의 하늘에 떠 있는 별의 아름다움을 이해한 것 처럼 말이다. 이처럼 어린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에는 그 어떠한 불가능도, 틀린 세상도 없다. 그냥 세상은 그렇게 표상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수학이나 과학 암기를 무작정 시키며 일찍이 창의력을 막아버리는 주입식 교육이 여전하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세상을 바라봤을 때 그것을 내가 아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나쁜 세상, 잘못 된 세상이라고 바라보며 악한 이자무라의 모습을 닮아가게 된다. 따라서 무작정 많은 책을 보고 지식을 얻는 것 보다 스스로가 깊이있게 생각 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배움의 즐거움을 깨우치게 하는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별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지 않을까?